한국 술의 역사

우리의 선조들이 음주와 가무를 즐긴 민족이란 사실은 여러 고문헌에 잘 나타나 있다.

고구려 건국설화에서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하백의 딸 유화가 합환주를 들고서 동명성왕을 낳았다는 사실(제왕운기)을 통해 예로부터 혼인할 때는 술을 빚어서 부부가 함께 마셨을 것이라는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전설로 본 술의 기원 : 동명성왕 이야기

우리나라에도 술에 관련된 신화나 전설이 있다.

오룡거를 타고 내려오는 해모수

오룡거를 타고 내려오는 해모수

 

하루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지상에 내려와 놀다가 연못가에서 물의 신인 하백(河伯)의 세 딸을 만난다.

그녀들의 미모에 혹하여 사랑에 빠지게 된 해모수(解慕漱)는 그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하여 술을 권한다.

기꺼이 그 술을 받아 마신 큰딸 유화(柳花)는 술에 취하여 수궁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였다.

 

마침내 해모수와 하룻밤의 달콤한 사랑을 나눈 유화는 열달 수 커다란 알을 낳게 되는데 그 알 속에서 나온 것이 주몽(朱蒙)이다.

이 주몽이 바로 후에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東明聖王)이다.

 

 

또한 삼국사기 고구려 대무신왕 편에는 지주(旨酒)를 빚어서 그 효력으로 한(漢)의 요동태수를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투를 하기 전에 병사들에게 술을 하사하여 사기를 높이고, 나라의 큰 행사 때도 술을 나누어 마셨다는 뜻일 것이다.

 

일찍이 ‘동쪽의 활을 잘 쏘는 민족(東夷族)’들은 추수 때 천신에게 제사 지내며, 음주와 가무를 즐겼다(위지 동이전)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지금도 중국의 길림성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은 야유회를 가면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는 점에서 한족(漢族)들과 금방 구별이 된다고 하니 수천년 동안 내려 온 풍습이 유전적으로 굳어져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삼국시대에는 술 문화가 대단히 발달했던 것 같다. 이 시대에는 이미 술이 상업적으로 판매되기도 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술이 특수 계층이 아닌 일반 백성들에 의해 양조되었다.(‘한국의 음주 문화 변천사’ 참고)

일본 최초의 역사책인 고서기(古書記)에는 백제의 장인이었던 수수거리(須須許理)가 응신 천왕에게 술을 빚어서 대접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는 이 일로 하여 일본의 주신으로 대우를 받게 되었다. 삼국 시대의 각국에서 술문화가 고도로 발달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삼국이 통일되는 과정에서 중국과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는데, 이 시기에 엄청난 문명의 교류가 일어났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고려 시대에는 체계적인 양조술이 정착된 것 같다. 이에 따라 누룩 제조법과 각종 약주의 제조법도 크게 발달하였다.

 

이규보, 국선생전

고려의 유명한 문인 이규보(李奎報)는 ‘국선생전(麴先生傳)’을 저술하여 누룩(술)의 덕을 칭송하면서 그 남용으로 인한 폐해를 경계하였다.

한편 원 나라의 침공 이후로는 소주 제조법이 전래되어 양조 기술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왔다.

 

 

조선 시대에는 각 지방마다 유명한 토속주가 뿌리를 내렸다. 이에 따라 선비들의 술문화도 크게 발달하였다.

양조 방법으로는 누룩으로 밑술을 먼저 앉힌 다음 덧술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이런 식으로 양조된 팔도의 명주로는 경기의 삼해주, 약산춘, 충청의 소곡주, 노산춘, 평안도의 벽향주, 감홍로, 영남의 과하주, 송엽주, 호남의 호산춘, 두견주 등이 있다.

 

구한말에 주세 제도가 생기면서 각 가정에서 술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바람에 이러한 토속주들이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해방이 된 이후로 민간의 일부에서 제사, 혼사, 회갑연 등에 사용하는 술을 밀조해 왔고 이것이 토속주의 명백이나마 잇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빚어 왔던 토속주의 제조방법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대중 토속주는 청주와 막걸리인데 이것은 모두 누룩을 이용하여 만든 술이다.

누룩은 일종의 미생물 덩어리이다. 누룩의 제조법은 지극히 간단하다.

한 여름 삼복 더위에 밀을 거칠게 빻아서 솥에 찐 다음 자연 상태로 놓아두면 며칠 후 표면에 곰팡이와 효모가 뒤엉켜 누렇게 뜨게 된다.

 

 

청주와 막걸리 빚기

술을 빚기 위해서는 우선 곡물에 함유된 전분을 당으로 분해해야 하는데, 누룩에는 당화 효소가 듬뿍 들어 있어서 술밥을 당화시키기 되는 것이다.

누룩의 작용은 우선 꼬들꼬들한 밥을 흐물흐물하게 죽처럼 만들고 마침내는 액체 상태로까지 변화시키는 것이다.

요즘이야 당 분해 효소가 많이 개발되었고, 기술도 발전하여 곡물을 당화시키기 쉽지만, 예전에는 어떻게 하여 누룩을 만들어 내게 되었는지 감탄스럽기만 하다.

 

누룩 속에 들어 있는 효모는 당을 분해시켜 알코올 발효를 일으킨다.

누룩은 당화와 발효를 동시에 일으킬 수 있는 일종의 미생물 군집체였기에 예로부터 주모나 술꾼들이 애지중지해 온 신비의 물건이었다.

 

술이 다 익으면 액체(술)와 고체(술지게미)로 나뉘어지는데 액체를 분리해 내기 위해 일종의 체에 해당하는 용수를 박는다.

이 용수에는 맑은 술이 고이게 되는데 이것이 청주(淸酒)다.

서민층은 양이 적은 청주보다는 술지게미가 섞이기는 했지만 양이 많은 막걸리(濁酒)를 선호했다.

 

 

우리나라의 술이라고 하면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방법으로 제조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우리나라에서 수확한 원료를 사용하여 빚은 술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중주인 소주나 막걸리는 원료를 거의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제조 과정에서 누룩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쌀을 누룩으로 양조하여 빚는 청주야말로 우리 전통술의 맥을 이어주는 대중주라 할 수 있다.

명절 때나마 우리의 전통주가 애용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 밑술 : 누룩에 있는 효모를 배양하여 활성화시키는 과정(소량의 곡물 사용)                                                       
  • 덧술: 배양된 효모를 사용하여 본격적으로 술을 만드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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