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미소: 숙성과 블렌딩

미국 대표하는 버번위스키, 매년 새로운 오크통 사용

원액 혼합하는 블렌딩, 맥아로만 만든 몰트 위스키, 여러 곡물의 그레인 위스키, 혼합해 다양한 기호 맞춰

 

 

아일랜드 제임슨 증류소.

아일랜드 제임슨 증류소.

위스키업계에는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란 말이 있다.

 

위스키 원액이 오크통에서 잠자는 동안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조금씩 마신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실제로 위스키는 숙성 기간 동안 조금씩 증발하면서 양이 줄어든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선인들이 꾸민 이야기에서 그들의 재치와 위스키 맛에 대한 자긍심을 엿볼 수 있다.

천사도 반한다는 위스키 맛의 비결은 숙성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닐라와 캐러멜과 같은 달콤한 향과 높은 도수에도 입안에서 부드럽게 흐르는 질감, 그리고 영롱한 호박색의 빛깔이 모두 숙성을 통해 완성된다.

 

500여 년의 역사를 갖는 위스키가 숙성을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위스키는 원래 증류기에서 갓 나온 투명한 술이었다.

하지만 기후 때문에 연례적으로 갖던 휴식기 동안 위스키가 의도치 않게 숙성되는 일이 생겼다.

 

더불어 대영제국의 과세 강화를 피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위스키 증류소들이 산속으로 숨어들며 동굴에 위스키를 보관하게 됐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런 경험들이 숙성 기술로 발전돼 위스키는 오늘날과 같은 깊은 향과 맛, 짙은 색을 띠게 됐다.

 

 

 

수천 개의 오크통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숙성고는 언뜻 들여다봤을 때 단순한 저장 창고처럼 보인다. 그러나 숙성고 안에 들어가 향긋한 위스키 향을 맡게 됐을 때 비로소 숙성의 오묘함을 느낄 수 있다.

 

숙성은 다양하고 복잡한 화학 반응들로 구성돼 있다.

위스키의 주성분인 알코올 외에도 에스테르 등 수백여 개의 성분과 오크통에서 우러난 색소, 향미 물질이 끊임없이 결합하고 분해한다. 그 결과 위스키에 매력적인 향기와 부드러움이 더해진다.

 

 위스키 증류소들은 복잡한 숙성의 원리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일정 기간 숙성의 과정을 거치면 위스키 품질이 향상된다는 경험적 사실에 주목했다.

이는 20세기 초부터 스카치 위스키업계의 중요 마케팅 전략으로 자리잡았다.

 

 

시간이 흘러 위스키가 숙성되는 만큼 숙성에 대한 기술력과 이해도도 축적됐다.

위스키업계는 숙성 시간 못지않게 오크통과 온도도 숙성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미국에서는 버번 위스키 생산을 위해 매년 새 오크통을 사용했다. 이는 원액에 진한 나무 향과 짙은 색을 더하게 됐다.

 

스코틀랜드보다 따뜻한 기후는 숙성 과정을 촉진시켰다.

캐나다의 경우 추운 기후에서 위스키 숙성이 다른 지역에 비해 천천히 진행됐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캐나다 위스키는 다른 주류를 혼합하는 플레이버링(flavouring·가향) 기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높은 온도는 숙성을 빠르게 하는 한편 천사의 몫을 늘어나게 한다.

선선한 기후의 스코틀랜드에서의 천사의 몫은 연간 1~2% 수준이지만, 덥고 습한 대만의 경우는 5%를 웃도는 높은 수치를 보인다.

맛이 좋아지는 만큼 천사들이 더 빨리 마셔 버렸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를 반영하듯 숙성 과정에서 다양한 요인들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연산 표시의 의미는 품질이 아니라 단순한 마케팅적 요소로 활용되고 있는 추세다.

 

 

숙성뿐 아니라 위스키를 완성시키는 것은 바로 블렌딩이라 하겠다. 블렌딩이란 다양한 원액을 조합해 시장이 원하는 품질의 위스키를 빚는 과정이다.

블렌딩은 182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스카치 위스키는 맥아만을 사용한 제품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곡물을 혼합해 생산한 그레인 위스키가 대량으로 시장에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다소 가벼운 맛의 그레인 위스키와 몰트 위스키가 만나 스카치 위스키의 대명사인 블렌디드 위스키가 탄생한다.

블렌디드 위스키

 

오늘날 블렌더의 역할은 다양한 원액을 통해 균일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 한편,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환경에 따라 고객 기호에 맞는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숙성에 대한 노하우와 과학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복잡하고 다양한 숙성 과정을 완벽히 제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로 인해 숙성을 마친 오크통마다 조금씩 다른 맛과 향의 위스키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세계적인 위스키 업체들도 첨단 계측 장비보다 블렌더의 후각과 미각에 의존해 균일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과학 기술을 활용한 숙성 과정과 다양한 방법의 블렌딩 기술을 통해 위스키 품질은 쉼 없이 발전하고 있다.

또다시 어떤 기술과 방법을 활용한 다양한 위스키가 선보일지 궁금하다. 미래의 위스키를 맛보기 위해 자신의 몫을 기다리는 천사들의 흐뭇한 미소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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