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와인

로마시대로부터 조성된 유럽 각지의 포도원은 중세로 들어오면서 영주나 수도원에 귀속되었다.
각 포도원에서는 양조장을 세워 와인을 제조하였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 남부 유럽의 영주들은 자연스럽게 질 좋은 와인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과 잉글랜드에는 포도원이 없었으므로 영주들은 다투어 포도원을 가꿨다.

그런데 독일과 잉글랜드의 기후가 남부 유럽에 비하여 포도재배에 불리하므로 포도의 품종개량과 토양관리로 해결하려 하였다. 
또한 상대적으로 저열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다보니 양조기술에 대하여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되었다.

 

불리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이루어진 산물이 인류문명 아닌가?

오늘날 독일에도 와인이 발달된 것은 알프스 산맥 이남이 포도재배의 북한계선이라는 통념을 깨고 라인 강 유역에 포도원을 만든 중세의 영주들 덕택이다.

 

와인을 확보하는 다른 방법은 와인을 소유한 장원을 무력으로 빼앗는 일이다.
비가 많이 오는 잉글랜드에서 좋은 와인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웠으므로 그들은 항시 프랑스의 질 좋은 와인에 군침을 삼켰다.

 

 

14세기 말에서 15세기 말까지 일어난 ‘100년 전쟁’은 영국인들이 질 좋은 보르도 와인을 차지하기 위해 벌인 전쟁이다. 좋은 와인을 구하려는 유럽인들의 와인 사랑은 전쟁도 불사했다.

 

유럽의 중세는 봉건시대이기도 했지만 또한 가톨릭교의 시대이기도 했다.

지배구조가 이중으로 되어 있었으니 국왕에 소속된 영주와 로마 교황청에 소속된 수도원이 그것이다.
수도원은 종교행사에 포도주를 사용하여 유럽의 많은 수도원이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와인뿐만 아니라 맥주나 증류주의 양조기술은 대부분 수도사들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여기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이 남아 있다.

  

 

독일의 아이스바인(Ice Wein)은 프리미엄 와인으로 널리 애호되고 있다.

18세기 라인 계곡의 포도원들은 전부 수도원에 속해 있었다.
당시 와인이 잘 양조되고 안 되고는 양조자들의 정성에 달렸다고 믿었다. 따라서 포도는 수도원장의 허락 없이는 수확할 수 없었다.

 

아이스와인

1775년 실로스 요하네스부르크에 있는 한 수도원장은 장기간 타 지역에 머물렀는데, 돌아와보니 포도송이는 농익어 쭈그러지고 눈에 덮여 있었다.

수도원장은 하는 수 없이 그 상태로 포도를 수확해 술을 담갔다. 크리스마스 때 연 술독에서는 상상조차 못했던 질 좋은 와인이 고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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