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기 교수의 술 이야기] 와인의 종류 – 독일 늦따기 와인 (아이스 와인)

독일의 와인 – 늦따기 와인

독일인들은 양질의 와인을 만들려고 오랜 기간에 걸쳐 무던히도 애를 써 왔다.

 

그러나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지중해 연안국에 비해 기후가 한랭하고 음습하여 포도의 질이나 작황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특별한 포도 재배 기술과 수확 방법을 연구했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라인가우(Rheingau) 지역과 모젤 자르 루버(Mosel-Sarr-Ruwer) 지역의 특수 와인이 당당히 세계의 고급 와인 대열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의 라인 계곡에 가면 겨울철인데도 주렁주렁 열린 포도송이가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바로 포도의 늦따기(Spatlese) 기법으로써 이 기법은 발견된 후 최고급 스위트 와인을 만드는 고전적인 포도 수확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는 우연한 에피소드가 얽혀 있다.

중세의 수도원은 와인 생산을 독점하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의 수도사들은 와인 제조 기술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18세기 라인 계곡의 포도원에서는 수도원장의 허락 없이는 포도를 수확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1775년 실로스 요하네스 부르크에 있는 한 수도원장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다른 지방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 사이 그의 수도원에 속한 포도원의 포도가 익었는데, 수도원 사람들이 수확 허락을 받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했으나 허사였다. 이윽고 수도원장이 돌아와보니 포도는 농익어서 쭈글쭈글해지고 하얗게 곰팡이마저 피어 있었다.

수도원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그 상태로 포도를 수확하여 와인을 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전에 없이 맛좋은 와인이 만들어진 것이다.

 

보통의 포도는 풋포도에서 나는 시고 약간 떫은맛이 포도가 익어 감에 따라서 사라지는데, 이 늦따기 포도로 제조한 와인은 당도가 더 높으면서도, 동시에 곰팡이로부터 유래한 향긋한 신맛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마디로 지극히 이상적인 와인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밖에 잘 익은 포도 송이만을 골라 따서 만든 와인과 건포도 상태로 만든 와인, 그리고 포도 송이가 얼어버린 다음에 수확하여 만든 와인이 있다.

기후의 핸디캡을 역이용하여 멋진 와인을 만들어 낸 라인 계곡의 장인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오늘날에는 농기계가 발달하여 대부분의 농사일을 기계가 대신해 주고 있다. 그런데 유럽에는 아직도 예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고수하는 지역도 있다.
어떤 곳에서는 심지어 포도 한알 한알을 손으로 골라서 따기도 한다. 물론 그 와인은 비싸기는 하지만 그만큼 품질의 차별화가 되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필자는 수년 전 어느 겨울에 나이아가라 폭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겨울에 보는 것이 더 장관이다. 폭포수의 거대한 굉음과 양쪽 가장자리의 빙벽, 그리고 안개 방울들이 미세한 얼음 조각이 되어 비상하고 있는 나이아가라는 인간을 마치 몽유병에 걸린 환자처럼 허공에 띄우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필자가 누구인데 그런 곳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한잔 하러 간이 주점에 들렀는데 동행한 친구가 아이스 와인을 한잔 해보자고 꾀었다.

 

아! 그 맛이란……. 나이라가라산 아이스 와인의 향기가 부드럽게 얼굴 언저리를 감싸면서 감미로운 맛이 입안에 가득 퍼져 나갔다. 나이아가라의 설경을 배경으로 하고 마신 아이스 와인의 묘미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이아가라의 아이스 와인은 제조법이 엄격하게 규제되어 있다.

기온이 섭씨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간 날이 3일 이상 지속되었을 때 포도를 수확해야 한다.

 

한겨울에 수확한 포도는 냉동 건조되어 당도가 보통 포도의 2~3배나 높고, 향이 아주 풍부하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스 와인은 나이아가라 지역의 특산품이 되었고 가격도 다른 와인의 3~5배 이상 비싸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품질이 워낙 좋아 공급이 달린다고 한다.

 

가까운 이들과 옛이야기를 나누면서 60~70년대의 추억을 더듬노라면 한겨울에 먹던 홍시의 맛을 떠올리게 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필자의 고향 집에도 뒤꼍에 고염나무가 있었다.
해마다 서리가 서너 차례 내린 후에 고염을 따서 단지에 재어 놓고 엄동설한에 한사발씩 퍼다 먹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달콤하고 향긋한 맛의 기억이 새롭다.

 

양조학이 상당히 발달된 후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늦따기 기법은 두 가지 면에서 매우 과학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첫째는 포도 송이가 자연 상태에서 얼고 녹으면서 바람으로 인한 수분의 증발이 일어나 냉동건조 효과로 인해 당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둘째는 포도맛이 미묘하게 변화되고 발효에 참여하는 미생물 집단이 다양해진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미생물들은 와인에 섬세한 맛과 향을 내게 한다.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프랑스에서는 푸리튀르 노블레(Pourriture Noble), 독일에서는 에델포일레(Edelfaule), 영어로는 노블 롯(Noble Rot)이라고 부른다.

By | 2018-06-05T15:30:52+00:00 2018, 06, 05|명인 칼럼|0 Comments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