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기 교수의 술 이야기] 술잔의 세계

술잔의 세계

술잔의세계

 

차 마시는 문화가 성하여 다도(茶道)라는 말이 생겼다.

다도에서는 물론 마시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분위기를 제일로 치지만 다기(茶器)와 그 사용방법도 중요하게 여긴다. 차를 끓일 때 물방울이 기벽에 부딪혀 나는 소리를 즐기고 차의 빛깔과 찻잔의 어울림을 보면서 차의 맛을 음미한다. 주도에서 술잔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벌일 때는 어디나 술이 곁들여진다. 축제는 모인 사람들 전원이 술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 축배를 드는 데서 시작된다. 잔(盞)이나 배(盃)라는 말이 술 따르는 그릇이라기보다 술 그 자체를 의미하게 되었는데 ‘한잔하러 가자’고 하면 술을 마시러 가자는 뜻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옛날에는 모임의 수장이 하사하는 술이나 또는 술잔이 신임도를 나타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운동경기에서 우승을 하면 술잔을 상징하는 인증패를 준다.

월드컵이나 대통령배 등이 그 예이다.

 

 

술잔은 소뿔이나 조롱박 등의 자연에서 나는 그릇을 사용하는 데서 시작했을 것이다.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석기, 목기, 토기, 자기와 여러 가지 금속잔이 만들어졌다. 단순하게 만들어진 술 따르는 용기에서 형태나 무늬를 넣은 작품에 이르기까지 예술성의 분포도 넓다. 기능적인 면에서도 술의 종류나 마실 때의 기후 등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멋들어진 술잔은 술꾼들뿐만 아니라 여인들의 수집용품으로도 인기가 있다.

 

술잔에 관한 글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의 저서 성호사설에는 주기보(酒器譜: 술잔에 관한 내력)가 있는데 예부터 내려오는 술잔의 종류을 설명했다. 술잔은 크기에 따라 다섯 종류로 나뉘고, 가장 작은 잔을 작(酌)이라 하는데 알맞다는 뜻이다. 가장 큰 잔은 산(散)이라 하는데 이 잔으로 마시면 취하여 다른 사람에게 책망을 받는다는 뜻이라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람들은 예로부터 술잔에 관하여 많은 흥미가 있었던 것 같다.

 

술잔은 마시려는 술의 종류나 도수(알코올 농도)에 따라 다른 것이 사용된다. 향이 매우 강하거나 그다지 감미롭지 않은 술을 마실 때는 주둥이가 넓은(Wide Mouth) 잔을 쓰고, 향이 약하거나 미묘한 술에는 향이 모아져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으므로 튜울립처럼 주둥이가 오므라든 잔이 사용된다. 맥주와 동동주같이 도수가 낮고 양이 많은 술에는 큰 잔이 사용되고 위스키나 브랜디 등의 고도주에는 작은 잔이 사용된다.

  

이 밖에도 술잔의 모양은 서양식 와인 잔같이 대롱이 있는 것과 보통의 컵과 같이 대롱이 없는 것, 그리고 독일식 저그(Jug)와 같이 두껑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등으로 나뉜다. 대롱이 있는 것은 동양의 향로처럼 조형미를 멋들어지게 낼 수 있는데 이 잔을 이용하는 장점은 손에서 잔으로 전달되는 체온을 조절할 수 있는 점이다. 즉 화이트 와인은 낮은 온도로 저장된 상태로 음용되는데 보통 때는 대롱만 쥐고 술을 마시지만 경우에 따라서 술이 담긴 부분의 밑을 손바닥으로 거머쥐기도 한다. 그러면 낮은 온도에서 보존되어 있던 휘발성 향기 성분이 부드럽게 밖으로 나와 코끝을 자극하게 된다. 투구형으로 장식된 독일 맥주 잔은 대개 도자기로 되어 있는데 맥주 속의 탄산가스와 거품을 보존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동양의 술잔은 대부분이 도자기제였다. 백주나 소주의 잔은 크기가 작고 청주 잔은 중간 크기이며 막걸리 잔은 커다랗다. 우리나라나 일본의 청주나 중국의 황주 등 쌀을 원료로 만든 술은 50~60°C로 데워서 마시는데 도자기 잔과 잘 어울린다. 금속으로 만든 잔도 있는데 금, 은잔은 최고급임 주석잔은 맥주의 신선도를 잘 유지시켜 준다.

오늘날에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그릇이 귀하던 옛날에는 소의 뿔로 만든 잔이 흔했다. 이것을 본떠 만든 밑이 뾰족한 잔이 있는데 일단 술을 따르면 마시든지 아니면 들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술을 들다’라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술자리에 없어서는 안되는 술잔. 술잔이 술을 마시는데 사용되는 도구로서뿐만 아니라 생활에 멋을 더해 주는 장식물로, 또는 서로의 문을 열어 주는 상징물로 여겨진다면 술자리가 더욱 푸근할 것이다.

 

By | 2018-04-11T23:45:34+00:00 2018, 04, 11|명인 칼럼|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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