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이내로만 숙성한 대만 위스키

기후 탓에 원료인 보리생산 힘든데 OMAR·카발란, 수차례 연구개발

원액 수급문제 해결…원가도 절감 / 스코틀랜드보다 숙성시간도 단축

대만의 성공… 韓 위스키업계에 희망

 

 

대만의 위스키 증류소

1980년 함박눈이 쏟아지던 12월 어느 날 밤, 지금은 사라진 서울 영등포역 뒤편의 OB맥주 공장 실험실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대만 정부가 요청한 맥주 제조 샘플을 만들고 있었던 것. 엄격한 테스트와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맥주 샘플은 무사히 대만으로 수출됐다. 당시로서는 거금인 200만달러의 수출대금은 국산 위스키 프로젝트의 근간이 됐다.

맥주를 수출해 번 돈으로 한국 위스키시장의 개막을 알리게 됐다.

 

지난겨울 필자는 대만의 두 주류 업체를 방문했다.
이제는 세계적 품질로 위상이 높아진 대만 위스키들을 바라보며, 30여 년 전 대만에 맥주를 수출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불을 밝히던 때를 회상하니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대만은 중국과의 경쟁을 통해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해왔다.
술은 서민이 즐겨 찾는 황주와 중국과의 대치 과정에서 만들어져 유명해진 금문고량주 등이 여전히 대만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대만인들의 위스키 열정은 남다르다. 지인끼리 축하하는 자리에서 위스키 한 병을 나눠 마시는 문화가 보편적이다. 젊은이들도 여가시간에 위스키 바를 찾는 일이 낯설지 않다. 인구가 한국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대만 위스키시장은 한국과 맞먹을 만큼 크다.

이런 위스키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대만에서는 세계적인 위스키 업체가 두 곳 탄생했다. 열대기후에서 위스키 생산이라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을 해낸 것이다.

 

대만담배주류공사(TTL)는 오랜 기간 대만의 주류산업을 독점적으로 이끌어왔다.

한국과 비슷하게 원액을 해외에서 들여와 독자적인 브랜드로 유통해온 위스키는 그들의 효자 상품 중 하나였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달러 환율이 급등해 원액 수급이 어려워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갑작스레 오른 원액 가격 때문에 TTL은 위스키 자체 생산을 검토하고 실행에 옮기게 된다.

위스키의 원료인 보리가 나지 않는 열대기후에서 위스키를 생산하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다. 특히 위스키 종주국인 스코틀랜드는 서늘한 스코틀랜드의 기후가 위스키에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해왔다. 높은 기온 탓에 ‘천사의 몫’이 높아져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TL은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위스키 생산에 성공했다. 더 나아가 위스키 원액 수급 문제를 해결한 것은 물론 기존의 위스키 제품에 비해 원가도 절감했다. 핸디캡으로 보이던 열대기후는 숙성에서는 오히려 이점이었다. 천사의 몫이 높은 대신 스코틀랜드보다 빠른 속도로 숙성이 이뤄졌다.

 

TTL에서 최근 출시한 싱글 몰트 위스키 ‘OMAR’는 시장에서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좋다고 한다.

공정을 소개하던 판제창 공장장은 “수입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원액을 수입하나 보리를 수입하나 마찬가지”라는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대만의 위스키 (오마르, 카발란)

대만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카발란의 탄생은 더욱 극적이다.

카발란의 모기업인 진처(金車)그룹 창업주 리톈차이 회장은 대단한 위스키 애호가다. 위스키를 즐겨 마시면서도 대만 위스키가 없는 현실을 늘 아쉬워하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대만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정부에서 독점하던 주류산업의 규제가 풀린 것이다.

위스키 공장을 세우려는 큰 포부로 해외 전문가 10여 명을 초빙했다. 결과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모두 한목소리로 대만에서 위스키 생산은 어렵다고 답한 것이다. 하지만 리 회장의 신념은 확고했다. 대만인의 위스키에 대한 열정과 기술력이라면 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는 프로젝트를 강행했다.

수년간의 실패 끝에 2005년 위스키 생산에 성공했다. 카발란은 대만의 더운 기후가 오히려 더 높은 품질의 위스키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5년 이내로만 숙성하는 카발란 위스키는 지난 10년간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200개 이상의 금상을 수상하며 품질을 증명했다. 대만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인기가 높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수출되고 있다.

 

1981년 한국의 위스키 국산화 정책은 1991년 주류 수입 개방과 함께 전면 백지화됐다.

대만 위스키의 성공을 한편으로 부러움과, 한국 위스키 재기의 희망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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